Bake Me...
카테고리
작성일
2024. 10. 13. 02:06
작성자
베이킹파우다

*coc 시나리오 VOID 다량 스포

 

"난 안드로이드를 싫어해." 

지극히 단순해서 굳이 최신형 안드로이드가 아니라도 내릴 수 있는 삼단논법. 고마 마야는 안드로이드를 싫어한다. 앙겔라는 안드로이드다. 고마 마야는 앙겔라를 싫어한다.



적합률 100%. 세상에 정말로 그런 확률이 존재한다고? 무언가의 오류일 것이다. 앙겔라가 이 결과를 도출하는 데에는 0.47초도 걸리지 않았다. 굳이 곁들여 설명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신체 건강한 20대 청년이 누구도 접근 불가능한 지하 벙커에서 혼자 문을 잠근 채로 안전하게 잠들어 있다고 해도 다음 순간 살아있을 확률은 한없는 99.99%에 수렴할 뿐 100%라는 결과를 내놓지는 않는데, 하물며 오차범위가 크면 컸지 적지는 않을 두 인격체의 만남을 100%로 정의한다? 믿어볼 가치도 없는 계산 결과다. 이것 역시도 앙겔라를 둘러싼 수많은 오류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 앙겔라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오류투성이 안드로이드였다. 말도 안 되지만 실은 매일 밤 꿈을 꾼다든가. 꿈을 꿀 때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기억을 훔쳐보고 있다든가. 당당하게 자기를 바이러스라고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든가… 앙겔라는 그 사실에 특별히 부끄럽다거나 하는 모든 비슷한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그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감각만은 분명히 알았다. 늘 제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아오키 레이토의 태도가 변할지도 몰라서, 혹은 폐기가 두려워서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앙겔라는 그저 그런 결함을 안고도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수사 보조용 최신형 안드로이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마 마야. 그의 적합률 100% 파트너.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겉모습과는 달리 동정심이 많고 마음이 약하다. 원칙을 따지지만 효율을 추구하고 상식적이다. 기계를 선호하지 않는다. 불호가 공격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그것뿐이다.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보아도 자신과 마야가 잘 맞는다는 판단은 불가능하다. 둘 사이에 다른 파트너들이 보이는 친밀감이나 편안함, 신뢰…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마야 형사가 그 성과를 치하하는 정도의 건조한 관계.

그래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밤이 지나고 마야가 거절을 선언했을 때 앙겔라는 새삼스럽게 충격적이라는 감각은 없었다. 단지 그의 동의 없이 마야가 그와의 관계를 파기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예상했던 것보다 높다는 사실에 불안했을 따름이다. 파트너의 파기. 누가 보아도 실패한 관계. 누가 보아도 실패한 안드로이드. 그런 불량 중고품 로봇을 누가 파트너로 기용할 것인가 하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완벽한 수사 보조용 최신형 안드로이드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결과다.

마야가 생각한다면 앙겔라는 계산한다. 앙겔라의 데이터베이스는 아마 경찰 내부의 프로필을 전부 수집하고 있을 인공지능보다 한없이 빈약하다. 150cm가 채 되지 않는 몸체에 든 컴퓨터로 이 분량의 계산식을 처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앙겔라가 해야 하는 계산이다. 안드로이드를 신뢰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어떤 안드로이드가 완벽한 파트너가 될 수 있는가?

보통의 인간이 수사 보조용의 안드로이드로 선호하는 기능이라면 아마도 자료 백업이나 전투능력, 적절한 순간에 발휘하여 위기를 넘길 수 있는 기지 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그건 안드로이드로서의 기능일 뿐이다. 앙겔라는 HAL9000을 떠올린다. 그건 앙겔라가 그나마 오랜 시간을 교류한 안드로이드가 그뿐이어서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가 인간들에게 보내던 동정심 어린 눈빛과 괴롭힘당하던 안드로이드 앞에서 억누르던 감정들. 인간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풍부한 감성과 공감능력의 소유자라는 점 때문에… 그런 인간보다도 더 인간다운 안드로이드였다면 마야에게 어울렸을까?

제대로 된 감정모듈ㅡ앙겔라는 그걸 과연 모듈이라고 칭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 그런 계산은 자신의 몫이 아니니까ㅡ이라면 모름지기 희로애락 따위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앙겔라가 강하게 느끼는 감정이라곤 오로지 두 종류다. 하나는 그리움. 나머지 하나는 공포. 전자도 후자도 원인을 모르는 앙겔라로서는 어렴풋이 이것이 일종의, 안드로이드가 지녀야 할 자질이라고 믿었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안드로이드의,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지키도록 남겨진 자질.

그러나 앙겔라는 문득 떠올린다. 인간만큼이나 정교한 회로를 통해 섬세하게 제작된 안드로이드에게 있어 하나의 에러란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키보드 자판 하나가 고장 난 노트북이 통째로 쓸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처럼. 그러니…계산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전제부터 달라졌다. 오류란 처음부터 없었다. 앙겔라가 계산해야 할 건 누가 마야에게 가장 어울리는 파트너 안드로이드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앙겔라가, 앙겔라만이 마야의 안드로이드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실수하지 않았다. 앙겔라는 애초에 마야를 위해 설계된 파트너인 것이다. 그러니 앙겔라의 오류들…아니, 오류라고 생각했던 모든 기능은 실은 마야만을 위해 설계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부차적인 차이일 뿐이다. 다른 안드로이드와 마야의 적합률 따위 계산해 볼 필요도 없다. 앙겔라가 존재하는 이상 세상의 어떤 로봇도 마야의 파트너가 될 수 없어. 둘이 파트너인 이상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것만이 최선의 결과다.

앙겔라는 머릿속이 밝아지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마야의 누명을 쓰지 말라는 명령 따위 제대로 회로에 입력되지도 않았다. 앞으로의 일 따위 두렵지도 걱정되지도 않다. 앙겔라가 고려해야 할 것은 여전히 단 하나뿐. 마야의 곁을 지킨다. 마야를 지킨다.



*



머릿속에서 영상이 잘못 감긴 필름처럼 마구 어지럽게 뒤섞였다. 마야를 지킨다. 언제부터 그게 자신의 목적이었지? 시야 안에서 목격해 버린 인간의 첫 죽음. 불행히도 그건 친구의 어머니였고, 총을 쥔 건 자신의 아버지였다. 신경줄을 타고 내려오는 공포. 인간이란, 죽음이란 저렇게도 허무하구나. 전신으로 타고 내려오는 이 오한은 뭐지? 계단으로 익숙한 실루엣이 내려온다. 엄마? 사랑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상대의 얼굴. 지금까지 어떻게 잊고 있었지. 남들이 보기에는 기괴할지라도 제게는 그저 다정하고 따뜻한 이 작은 세상을 영원히 잃게 된다고 해도…

그는 옆을 돌아보았다. 상관없다. 기묘한 비현실감이, 고양감이 그를 띄운다. 모든 증거가 완벽하게 당신을, 마야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그제서야 확신하지 못한 계산식 마지막 하나를 완성한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변한다. 앙겔라의 시작이, 결과가, 목적이 거기에 있다. 어떤 사람은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그걸 맹목이라고 부르겠지만 역시 앙겔라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후유미가 당신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면 나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태어났어. 당신의 눈에 비치는 번뇌도 고통도 앙겔라에게는 똑같이… 상관없다. 안드로이드든 사람이든 후유미든 앙겔라든 전부 똑같다. 시작도 답도 오로지 당신에게로 귀결된다. 내 죽음의 목적, 내 삶의 목적. 그러니까.



후유미의 삶은 일직선이었다. 그 위에 덧칠된 앙겔라의 삶도 일직선이다. 오직 당신을 향한.

"넌,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전 당신을 떠나지 않아요."

절대로요. 앙겔라가 이 결과를 도출하는 데에는 0.47초도 걸리지 않았다… 앙겔라가 100%의 완벽한 안드로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마야가, 그의 파트너가. 부족한 그의 나머지 전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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