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의 밀로이에겐 성이 있었다.
그때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과 누나도 있었다. 한쪽 손에는 아버지의 손을 한쪽에는 형의 손을 잡고 성당에 갔다. 높은 아치형 천장 아래 빛나는 유리조각들이 밀로이에겐 진짜 천국처럼 보였다. 신부의 목소리가 성경구절로 들리기보다는 노랫자락으로 들리는 나이였고, 그래서 책보다는 친구와 모래사장에서 뒹구는 시간이 길었던 밀로이는 때때로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꺼트리기도 했다. 그러고도 아무도 꾸중하지 않는 유년기가 갔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쯤엔 더 이상 성당에 갈 필요가 없었다. 종종 어머니가 언덕 너머에서 과일이나 직접 기른 채소 따위가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넘어왔고 그 바구니를 넘겨받아 돌아오는 길에서나 성당에 들르곤 했다. 밀로이는 아름다움에 언제나 솔직하게 감탄하는 성격이었고 그건 그때도 마찬가지었다. 잘 익은 저녁노을이 색색의 창으로 지면 물든 성당은 마치 천사가 든 파레트 같았다. 그 이야기를 하자 하나뿐인 누나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밀로이에겐 웃음소리도 똑같이 물든 추억으로만 남았다.
해는 간다. 그의 세계가 통째로 일그러졌을 때에도 공교롭기 짝이 없게 하늘은 보랏빛으로 얼룩덜룩 물들어 있었다. 슬픔보다는 경악이, 어쩌면 그보다도 참담한 시간이 지난 뒤 추억은 파편이 되었고 단둘이 남게 된 형이 했던 첫마디는 그런 추억은 그만 잊어버려, 였으나 밀로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 기억이, 간직한 추억이 밀로이를 살게 했고 또 울게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이 그의 곁을 떠났을 때는,
...
유산이 있었다. 자신이 가족이 남긴 모든 것이었다. 그 얼굴이, 마음이. 희극이나 다름없었다. 가족이 그를 생각하는 것보다 아마 몇 배는 끔찍하게 아꼈을 막내만이 유일한 생존자란 것이. 누가 남았어도 그만한 유산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형은 차라리 내버렸던 파편을 놓치기 싫어 흉터를 남기면서까지 쥐고 가는 그가 아니었더라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밀로이조차도 끝끝내 그 사실을 잊고 말았다는 것이다.
밀로이는 탁상 위의 안경을 매만지다 머리를 넘겨 귀에 걸었다. 그에게 조각난 색유리라고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 금 간 시야 너머 하늘만이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구태여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가 여전히 밀로이 로단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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