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ke Me...
카테고리
작성일
2024. 10. 12. 18:55
작성자
베이킹파우다

가장 오래된 기억을 꺼내보자.



그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은 서른 살 때이다. 그럴 수 있을 리 없으나 그렇다. 오염지대 안쪽에서 의식을 잃은 피난민을 발견했다.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지저분했다. 그의 시간을 되감고 또 되감았다. 얼마나 되감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 정신이 들었을 때에 그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시로 돌아온 다음에서야 기억이 났다. 그는 자신이 떠나온 도시가 멸망했단 걸 잊었다. 그는 집을 향해 돌아갔고 자신은 그를 배웅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를 찾아다녔으나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그렇게 오래는 아닐지도 몰랐다.



그는 일기장을 펼친다. 6월 다음에는 11월, 11일 다음에는 6일이 적힌 일기장이다. 대피소에서 눈을 뜬 것이 아무리 올려 깎아도 삼년은 된 일이었으므로 이 일기장은 통째로 거짓말이다. 무엇도 일기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일기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실패의 기억뿐이다. 자신의 능력은 돕는 만큼 사람의 발목을 잡았다. 자신이 살린 건 자신뿐이다.



일기는 점점 짧아진다. 그에게 남은 현재가 짧아지는 만큼. 어차피 읽지 않을 일기여도 적는 것은 현재를 가늠하기 위해서일 따름이다. 언제까지가 지금인지. 어디까지가 순간인지. 한 문장을 적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이 지나고 하루의 마침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찍혀 있다. 이미 희미해진 감각을 되쫓아 그는 누구든 붙잡아 말을 한다. 시간은 멀어도 지표가 있으면 쉽게 길을 잃지 않는다. 혹은 글씨를 쓴다. 획을 긋는 시간도 아까워 시간을 휘갈긴다. 문장은 뒤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 위안이다.



과거는 반추하고 기억은 되감긴다. 들숨과 날숨의 간격조차 모호한 세계에서 그는 가느다란 미래를 엮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때로는 되돌아간다. 방향이 어느 쪽인지는 그만이 모른다. 시간은 그에게 일방통행이 아니다.



언제부터 손목에 시계를 차고 다녔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보다 언제부터 고장나 있었는지도. 그는 시계에 손을 올린다. 시간을 되감는다. 시계는 모래처럼 부서져 허공에 반짝이는 먼지를 흩뿌렸다.





그제서야, 그는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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